【국보】아카이토오도시 갑옷<투구, 소매 포함>, 1952년 11월 지정

【국보】아카이토오도시 갑옷<투구, 소매 포함>사진01
시대의 첨단 기술을 활용한 무사의 혼헤이안시대 말기에 제작된 '대갑옷' 형식의 갑주로, 완전하게 갖추어진 가장 오래된 것. 총 중량은 26㎏ 정도.
신사의 기록에 의하면 1191년에 하타케야마 시게타다가 봉납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갑옷은 격이 높은 정식으로 제작된 갑옷이기 때문에 '정식 갑옷'이라고도 한다.

※헤이안시대 794년~1185년

실용미의 긴장감이 구현하는 대갑옷아카이토오도시 갑옷은 말 위에서 정확하게 화살을 쏘기 위한 기능성을 갖추고, 헤이안시대 귀족 취향의 미의식도 갖춘 대갑옷의 정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단히 귀중한 것.
에도시대에는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와 10대 쇼군 이에하루가 에도성에서 직접 보았고, 1800년에 간행된 <집고십종>에도 기재되었다.

※집고십종이란 마쓰다이라 사다노부가 정리한 유물·고미술 목록

장인의 기술이 빛나는 공예 기술의 결정대갑옷은 소가죽으로 만든 '미늘'이라는 부품을 끈으로 엮어서 만들어져 있다. 미늘은 크기는 작지만 이것을 여러 개 겹치면 방어의 강도가 높아지고, 공격할 때도 움직이기 더욱 편리한 아름다운 대갑옷이다.


【국보】아카이토오도시 갑옷<투구, 소매 포함>사진02
지금도 남아 있는 800년 전의 암적색헤이안시대 말기의 옛 암적색 실은 아직도 화려한 색깔을 보여주고 있고, 1903년에 새로 복원된 붉은색 실은 오히려 색이 바래 보인다.
헤이안시대의 염색 기술이 당시의 최첨단 기술이던 메이지시대의 염색 기술보다 우수했음을 알 수 있다.

위엄을 나타내는 옛날식 투구머리를 보호하는 투구는 '감투'와 '드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감투'에는 '호시'라고 하는 철제 리벳이 박힌 '이가보시 투구'. '드림'은 목과 어깨를 보호하기 위해 덮여 있고, 좌우의 끝을 부드럽게 구부려서 안면 부분을 방어한다.
【국보】아카이토오도시 갑옷<투구, 소매 포함>사진03
아름다움과 용맹성을 극대화한 완성품으로 남아 있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대갑옷투구의 '드림' 좌우 끝을 뒤집은 부분은 '후키카에시'라고 한다. 금속 부분 주위와 후키카에시 겉면에는 아름다운 문양이 그려진 사슴가죽이 붙어 있고, 국화 모양의 철물로 장식되어 있다.

기능성뿐만 아니라 헤이안시대의 귀족적이고 멋스러운 우아함도 느껴진다. 그리고 갑옷은 시대와 함께 변화하며 무가 고유의 호화롭고 웅장한 멋도 표현하게 된다.

【국보】아카이토오도시 갑옷<투구, 소매 포함>사진04
시게타다가 봉납한 것으로 알려진 아카이토오도시 갑옷하타케야마 시게타다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무기를 무사시미타케 신사에 봉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아카이토오도시 갑옷을 보면 무사시국의 신산 미타케의 신들에게 기도를 올린 시게타다의 무사다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무사의 귀감 하타케야마 시게타다하타케야마 시게타다(1164~1205)는 헤이안시대 말기부터 가마쿠라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한 무사시국 정부 최고 관리자의 집에서 태어났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가신이 되고, 가마쿠라 막부의 무사로서 중요한 존재였다.
가마쿠라 막부의 기록 <아즈마카가미>에는 용모가 뛰어나고 음악 재능도 있을 뿐 아니라, 커다란 바위를 옮길 정도로 힘이 센 사람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의 '히요도리 고개의 역습'으로 유명한 이치노타니 전투에서는 '말이 다쳐선 안 된다'며 애마를 등에 짊어지고 절벽을 내려갔다는 에피소드가 남아 있다.
청렴한 인격은 '무사의 귀감'이라고 칭송되었다.